[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온양행궁터 그리고 어금니바위김재천 한글창제의 꿈을 싣고 온양행궁에 도착한 어가(御駕)어가 처마 끝에서 피어나는 한글문자 향(香)을 떠올리는 세종(世宗)은몇 날 며 칠을 머물며 훈민정음의 얼개를 만들었다 달 밝은 밤 황량한 온양행궁터에서충무공 이순신은 언문으로 쓰인 어머님 편지를 읽으며도포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친다 대낮에는 힘껏 말을 달리며 어금니 지그시 물고 활을 쏘았다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쪽 팔꿈치와 어깨가아산의 영인산 어금니바위에 맞닿는다 부성애(父性愛)를 싣고 온양행궁에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서울의 마지막 과수원김재천 눈이 즐거운 사과꽃 배꽃 복사꽃 향기 속에잠자던 동심(童心) 마저 꽃길따라저절로 피어나는 곳 거의 모든 곳이 아스팔트 고층건물이 된서울 하늘 아래그 옛날 과수원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 과수원의 꿀벌이 잉잉거리는* 지금마치 살아있는 유적지를 찾아온 듯흥겨운 어린아이처럼 마냥 거닐었다 각박하고 촌각을 다투는 세상살이저마다 힐링과 휴식이 필요한 때‘과수원’ 어감 하나만으로 안식을 받는다 올 가을 탐스럽게 열릴 사과 배그 열매를 바라보며 걷는 낙엽길상상만으로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체력검정김재천 ‘평범’에 도달하는 여정은절대 쉽거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해 사월꽃샘추위 속 꽃씨처럼심호흡과 간절함에 파묻혔다 다시 찾아온 체력검정일상회복의 신호탄인 듯일상의 삶에서 맞이하는 봄꽃들 사월 그 날경직과 긴장 가운데 거센 맞바람을 견디고우직하게 피워내야 했던 들꽃마냥맨 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왕복오래달리기’ 완주 직후후련함이었는지 안도감이었는지꽃들마저 숨죽여 바라본 듯 바람이 멎는다 ‘평범’에 도달한 지금벼랑에 핀 꽃이 어떤 사연을 안고벼랑 끝 심정이 어떤지를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역사의 아이러니 ‘새절’ 봉원사(奉元寺)김재천 극(極)과 극(極)이 여기저기 자리한 모습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한자서체 조형물 건축물 조선 개국과 망국 인사의 필체가 있는 명부전(冥府殿)조선 쇄국과 개화 인사의 대방(大房)과 합장 기념비한자 서체와 한글 최고봉의 대웅전 현판과 한글학회 표지석 육 백 년 이상의 긴 시간 속굵직한 흔적의 양면(兩面)을보듬고 아우르고 있는 ‘새절’ 봉원사 마치 불국사 가람배치와 국보 보물급 건축물들이비대칭과 부조화 속에 꽃피워낸 균형과 조합의 미를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구리시 그 칼국수김재천 다시 찾은 메뉴판 없는 식당의 그 음식 부지도 새로 사고 건물도 새로 지었지만맛은 그대로 푸짐한 양도 그대로소담스런 칼국수 단품 메뉴도 그대로였다 여느 칼국수하고 다른 것이라곤그저 감자 맛이 깊이 우러난다는 것뿐인데큰 스텐 양푼 가득 담긴 면발을예전처럼 남김없이 비웠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알고공기밥 서비스로 인정(人情)을 알고변함없는 맛으로 지조(志操)를 지킨 것의보답이었을까 오늘도 이 소박한 음식을 찾아 나선길게 줄 지어 서있는 분들을 보며다시금 삶의 자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다시 찾은 망우역사문화공원김재천 민족의 불우한 역사공간은 기적이 되고허름하고 가슴 아픈 묘지는 공원으로 탈바꿈한서울 동쪽 끝 고갯마루에 자리한망우역사문화공원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빛낸수많은 위인(偉人)의 넋을아침엔 떠오르는 햇살이저녁엔 해지는 노을빛이 기리는 그 곳 십 년 전 몇 번 들렀을 때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의 산책이었다면꽃샘추위속 다시 둘러본 발자취는묘비석 꽃 나무 하나하나에 눈길이 닿는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위인들은 모두 떠나고 넋만 남아있는공원 묘지들을 휘이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고향 충청도김재천 이제는 삼십 분에 불과한 거리이건만서울엔 잔설(殘雪)이 안 보이고충청엔 잔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십 분에 불과한 거리이건만경기엔 구름에 덮인 그림자 해만 보이고충청엔 구름 사이로 해가 나고 있다 강원도의 푄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서울 경기와 충청의 경계는 더 엷어지는데궁금증을 안은 채 달리는 열차만 타면뚜렷이 보이고 느껴지는 기현상(奇現象) KTX 열차 급행철도 고속화도로도피해가지 못하는 봄날의 아지랑이충청의 느린 사투리와 속 깊은 생존력이아른아른 오래 남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인연 그리고 관계김재천 보기 껄끄러운 사람 다시 만나고함께 하고픈 사람 자주 보기 힘든고달픈 하루하루의 생활 하고픈 일 돈 안 되고하기 싫은 일 돈과 안정을 가져다주는야속한 또 하루하루의 생활 이런 엇박자 속에누구나 쉽게 오해할 수 있는편견과 유혹의 결과물인연(因緣) 그리고 관계(關係) 삶의 수많은 관계를 인연인 양생각하며 살았던 집착과 망상을때 이른 봄바람에 씻겨본다 인연은 서로에게 부담주지 않고허물없이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사이임을알게 해 준 지난 과오와 실수들 모진 꽃샘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안중근 의사 유묵(遺墨) 앞에서김재천 이름하여 ‘안중근체’를 볼 적마다가슴엔 잠자고 있던 애국심이 솟고손은 나도 모르게 필체를 따라 움직인다 낙관(落款)을 대신하던왼손 약지손가락 마디없는 손바닥 문양은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안중근 의사의 영(靈)과 혼(魂)을 담고 있다 완성된 작품 끝에 왼손바닥을새까만 먹물 위에 옮길 때마다마음은 앞이 안 보이는 나라 걱정으로왼손바닥처럼 새까맣게 타들어 갔으리 검은 왼손바닥을 작품 위에 찍을 때마다하얀 종이 위의 흔들림 없고 빈틈없는그의 푸른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오 곡 밥김재천 일흔 세 번째 생신을 하루 앞두고빙판 낙상으로 겨우내 팔에 깁스를 하신장모님 정확히 이십 년 전아버지 치료받으시던 병원으로깁스 푸시려고 다녀오는 길 아버지 성묘조차일 년에 한 두 번 고작인데사부인(査夫人)께라도 자주 찾아 뵈라시는지오늘도 못 다하고 있는 효도 양심의 거울 같은 병원을 나오자어머님께서 건네시는 말씀“집에 오곡밥 해 놨으니 먹고 가져가게!” 정월대보름날 이른 새벽이면꼭 차례를 올리셨던 아버지 덕분에효도의 가풍(家風)을 가슴에 품으며둥근 달에 비춰보는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말(言) 곧 지갑김재천 말이 곧 지갑되어우리 몸 깊은 곳에 간직되고꼭 필요한 때만 꺼내어 열린다면 나의 또 다른 나나의 생각 의지 바람을 드러낼 때나를 대변해 주는 도구인 말(言) 때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밖으로 꺼내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이르게까지도 하는 무서운 존재 입을 열기 보다는 지갑을 열어서말 없는 뒷모습을 남기는 것이더 아름답고 은은함을 알게 된 지금 흰 눈처럼 자연스럽게 왔다가보기 좋은 눈꽃 세상 이뤄놓고 사라지면그 여운 오래 남게 될 텐데 말(言)은 입이 아닌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일 만 원김 재 천엄마 돌아가시고 첫 번째 맞는 설날초등학교 삼 학년에 올라가는 막내 동생은이 삼 천원 세뱃돈을 떠올리며아침부터 싱글벙글 해마다 명절과 제사 때면어김없이 양복을 입고집에 내려왔던 띠동갑 큰 형님 차례상에 절을 마치자마자 갑자기형님이 건네준 처음 받아 본일 만 원 그 때 그 초록빛깔 지폐 한 장의 감동은돈벼락을 맞은 듯 잠깐 어지러웠고구름위에 올라앉은 듯 붕붕 들떴다 형님 떠난 후동생은 그 돈을 곱게 곱게 두 번 접어부엌에 있는 둘째 누나에게 달려가 건넨다 햇살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유 려 (流 麗)김재천 총기어린 눈매옹골찼던 목소리에서스며 나오는 비범함은 여전했다 비슷한 연배임에도화장 속 본모습을 들여다보기엔시의 감춰진 행간(行間) 만큼이나사 반 세기라는 시간은 촘촘하면서도 서먹했다 세 시간 넘는 시간이삼 분처럼 느껴졌던 재회(再會)눈 내리던 그 날처럼 ‘유려(流麗)’라는 단어가매개체가 되고 추임새가 돼 주었다 복채(卜債)같은 술값도 대신 지불했던수수한 고학생(苦學生)에게서 건네받은 ‘유려’는지금의 내가 시를 쓰고 좋아할 것이라는예언 내지 부적이었을까 그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강추위 속 남산의 차(茶)김재천 저마다 삶의 완주(完走) 시간과 방법은따로 있음을 시행착오 끝에 알게 해 준마라톤 풀코스 한 겨울 이른 아침의 런닝맹추위를 온 몸에 달고 달리다한 발짝 한 호흡마다 몸 밖으로 밀어냈다 한 삼 십 분 지나면추위와 땀의 경계에 선 몸 상태를 벗어던지고겨울 추위를 두 동강 내듯 오십 리를 달렸다 사발면과 물 한 모금은이 맛에 달린다 싶을 만큼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짱짱한 허벅지의 겨울을 이기는 러너였다 오늘 아침 이제는 장력(張力) 잃은 허벅지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한강 그리고 한강다리김재천 동서로 흐르는 한강은 살아 꿈틀거리는 실(絲)남북으로 이어진 다리(橋)는 혈관을 찾는 바늘(針) 눈앞에 길게 펼쳐진 붉은 우레탄 길모세혈관 같은 그 길을 걸으며다리 밑을 가로지르는 한강 물줄기를 굽어본다 강 저편에선 다리 쪽으로 마치 수혈(受血)을 위해유람선 한 척 미끄러지듯이 다가선다함께 삶의 활력을 받고자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느덧 도착한 다리 끝 지점강(江)이라는 생(生)의 이 편과 저 편왔던 길 돌아보니 활력의 충전에는시작도 끝도 없었다 오늘도한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독립영화 「창밖은 겨울」김재천 순전히 본 것은 우연이었고글을 쓰는 건 필연인 영화 영화 속 진해(鎭海) 곳곳 장면은경상남도 끝자락의 바닷바람이 불어와그 곳 특유의 소금기를 느끼게 해주었고 등장인물들의 사투리 어감(語感)은이십 대 시절 낯설었으나 지금은 아련할 만큼그리운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고 MP3와 버스 그리고 어른 자전거 장면은최첨단 AI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 여운을마치 자전거 두 바퀴 위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올 겨울 세렌디피터스*한 「창밖은 겨울」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맛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졸업식 저 너머김재천 졸업가운을 벗자마자 학원으로 가는 모습 속에지난 시간 큰 아이를 괴롭힌 병마(病魔)는 사라지고정반대 방향의 발걸음 소리 힘차게 들려온다 둘째 아이 중학교 졸업식강당에서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는 아이의 영상들십 삼 년 전 아이 모습으로 달려가게 한다 『새벽 2시, “아빠! 무~울”새벽 4시, “엄마! 기저귀”엄마가 하라면 “아니고!”아빠가 하지 말라면 “아니야!”언니가 가르쳐주면 “안 돼!” 언제나 정반대로 하는 아이다급하고 피곤할 땐 왠지 짜증이 나기도 하지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보신각(普信閣) 종소리김재천 언제부턴가 듣기 힘든 것 중 한 가지오리지널 사운드 ‘종소리’ 종소리가 울리는 곳에는경건과 소망과 도전이 깃든다 각종 소리와 소음의 홍수에 파묻힌 지금은은하고 잔잔한 파동의 울림이더욱 그립고 사무친다 그래서인지범종(梵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마음속 고요와 그 울림이 메아리친다 새 해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타종(打鐘)온누리에 믿음을 전해주는 그 소리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값진 종소리. - 시 담 -갑진년 새 해가 시작되었다. 어떤 글로 새 해를 시작할지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오점(汚點)을 지우다김재천 얼굴 피부의 잡티는 나도 모르게 생겨났고인지한 것은 순간이었으며치료는 오래 걸렸다 대 여섯 개 많아야 열 개 정도 인 줄 알았다처음엔 열 세 개 나중엔 열 두 개생(生)의 지우고픈 흔적들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무구(無垢)와 순백(純白)을 유지하는 것그런 상태로 완전복구 한다는 것사실상 불가하고 간단하지 않았다 마음과 정신의 오점을 제거하는 데는얼마나 오래 걸리고 어려울지자못 궁금해지는 세밑. - 시 담 -2023년 올 해 마지막 칼럼이다. 지난 202
[시티타임스=소방관 시인 김재천의 마음의 불 끄는 글] 「이븐이」김재천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나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돌아가면서거의 매일 다녀가는 커피숍 「메이븐」 그 곳에 가면 입구에서 손님맞이를 하는예쁜 나비 넥타이를 맨 고양이 「이븐이」 가 있다온 가족 모두 아기고양이때부터 보아왔다 얼마 전엔 한가해진 틈을 타이븐이에게 다가서니 사장님 내외분이먹을 거 주면 더 좋아하고 얘교를 부린단다 손님이 많으면 밖에서 있다가손님이 뜸하면 안으로 들어와언제 들고 나고 해야 하는지를 안단다 며칠 전 메이븐에서 차를 마시다이븐이 잘 있냐고 물으니